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설명할 때 “공감이 없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해요. 그런데 이 문장을 “상대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한다”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연구가 보여 주는 모습보다 훨씬 단순해집니다. 공감에는 다른 사람의 관점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 그 감정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과정, 알아차린 뒤 실제 행동을 조절하는 과정이 섞여 있기 때문이에요.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온라인 행동 몇 가지로 판단할 수 있는 성격표가 아니에요. 현재 MSD Manual Professional은 과대감, 찬사에 대한 욕구, 공감의 어려움이 여러 상황에서 지속되는 임상 패턴을 설명하지만, 진단은 전체 성격 기능과 지속성, 기능 손상, 다른 가능한 설명을 함께 평가해 이루어집니다. 이 글은 누군가를 “공감 없는 나르시스트”로 골라내는 방법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말이 실제 연구에서 어떻게 쪼개지고 측정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글이에요.
공감은 하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 과정이에요

일상에서 공감은 하나의 단어지만 심리학 연구에서는 여러 요소를 나눠 봅니다. 흔히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추론하거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에 가깝고, 정서적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정서적으로 반응하고 함께 움직이는 측면을 가리켜요. 연구마다 사용하는 용어와 검사 도구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이 구분은 “공감이 있다/없다”라는 이분법보다 실제 자료를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동료의 표정과 상황을 보고 “지금 당황했겠구나”라고 정확히 알아차릴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 알아차림이 곧 따뜻한 관심이나 배려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한다고 해서 상대의 관점과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도 아닐 수 있고요. 알아차림, 정서 반응, 행동은 연결되지만 같은 기능은 아니에요.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기존 Narci 글에서 설명한 일상어 ‘나르시스트’와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차이를 더 세밀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 마음을 이해한 것 같은데 왜 행동은 바뀌지 않지?”라는 질문과 “내 감정을 아예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는 질문은 서로 다른 과정을 묻습니다. 한 장면만으로 임상 진단을 붙이는 대신 무엇이 관찰됐는지 구체적으로 적는 편이 정확해요.
NPD 연구에서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다르게 측정됐어요

이 차이를 직접 살핀 대표 연구가 Ritter와 동료들의 2011년 연구예요. 연구에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진단군 47명, 건강 대조군 53명, 경계성 인격장애 임상 대조군 27명이 참여했습니다. 연구진은 자기보고 설문만 쓰지 않고 Multifaceted Empathy Test와 Movie for the Assessment of Social Cognition 같은 수행 과제를 함께 사용해 인지적·정서적 공감을 나누어 보려고 했어요.
이 표본에서 자기애성 인격장애 집단은 정서적 공감 과제에서 유의한 어려움을 보였지만, 인지적 공감 수행에서는 건강 대조군과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구 결과를 “인지적 공감은 언제나 정상이고 정서적 공감은 언제나 없다”라고 바꾸어 읽으면 안 돼요. 한 연구의 평균 차이는 개인 한 사람의 능력을 확정하지 못하고, 어떤 과제를 썼는지에 따라 측정되는 과정도 달라집니다.
같은 연구 안에서도 자기보고와 수행 과제가 서로 다른 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해요. 사람은 자신의 공감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고, 설문은 실제 상황에서의 수행과 다른 내용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감 능력이 높다”는 자기평가나 “저 사람은 공감이 없다”는 주변 사람의 평가 어느 한쪽만으로 임상 결론을 만들 수 없어요.
이런 이유로 2014년 Baskin-Sommers, Krusemark, Ronningstam의 리뷰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공감을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여러 경로가 얽힌 기능으로 정리했습니다. 당시 직접 NPD 표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 수가 많지 않았다는 한계도 함께 지적했고요. 연구가 적을수록 단정적인 인터넷 문장보다 표본과 측정 방법을 보는 습관이 더 필요합니다.
표정 인식 연구는 공감의 또 다른 조각을 보여 줘요

Marissen과 동료들은 2012년 자기애성 인격장애 집단 20명, C군 인격장애 집단 20명, 건강 대조군 20명을 비교해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인식하는 과제를 살폈어요. 자기애성 인격장애 집단은 건강 대조군보다 감정 인식 수행이 낮았고, 연구에서는 특히 일부 부정적 정서를 알아보는 데 차이가 보고됐습니다.
하지만 얼굴 표정 인식은 공감 전체와 같지 않아요. 사진에서 감정을 분류하는 과제는 실제 관계에서 상대의 말, 맥락, 과거 경험, 목소리까지 통합하는 일보다 훨씬 제한된 상황입니다. 표정 인식이 어려운 사람이 항상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표정을 정확히 읽는 사람이 항상 배려하는 것도 아니에요. 연구 결과가 가리키는 것은 “공감은 여러 정보처리 단계로 나뉠 수 있다”는 점에 더 가깝습니다.
또 이 연구는 세 집단이 각각 20명인 비교 연구였어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단서를 주지만, 모든 연령·문화·관계 상황에 그대로 일반화할 만큼 큰 표본은 아닙니다. 진단군 내부의 차이도 평균값 뒤에 가려질 수 있고요. 특정인의 표정 읽기 실수 몇 번을 보고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추론하는 것은 연구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갑니다.
능력이 있는지와 실제로 사용하는지는 따로 봐야 해요

2014년 리뷰와 2022년 Weinberg·Ronningstam의 리뷰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지점은 공감 기능이 고정된 스위치처럼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정서적 반응, 관점 이해 능력, 관심을 어디에 두는지, 불편한 감정을 견디는 정도, 자기평가가 흔들리는 상황 등이 함께 작동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비교적 정확히 읽다가도 자기 이미지가 크게 위협받는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다루는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식이에요.
여기서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안 한다”라고 모든 행동을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능력, 동기, 정서 조절, 주의 배분은 연구에서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조합이 달라요. 2022년 리뷰는 정서적 공감의 어려움과 비교적 보존된 인지적 공감이라는 연구 흐름을 소개하면서도, 동기·자기조절·대인관계 과정이 그 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격 특성을 연구한 2014년 Hepper와 동료들의 실험에서는 관점 취하기를 유도했을 때 일부 자기애적 특성과 낮은 공감의 관계가 완화되는 결과가 나왔어요. 다만 이 연구는 임상적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 집단을 진단해 비교한 연구가 아니라 자기애 특성을 다룬 연구입니다. 그러므로 “NPD라면 지시 한 번으로 공감이 회복된다”는 식으로 옮겨 쓰면 안 돼요. 임상 진단과 성격 특성 연구를 구분하는 선이 여기에서도 필요합니다.
이 구분은 ICD-11이 인격장애를 심각도와 성격 특성으로 함께 보는 이유와도 이어져요. 하나의 행동이나 특성만 뽑아 사람 전체를 설명하기보다 자기 기능과 대인 기능이 얼마나 넓고 지속적으로 흔들리는지 살피는 방식이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온라인에서 “공감이 없다”고 단정하면 틀리기 쉬워요

가까운 사람이 내 감정을 반복해서 무시했다면 “공감이 없다”는 표현이 경험을 설명하는 말로는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다만 그 문장을 곧바로 진단 문장으로 바꾸지는 않는 편이 좋습니다. 상대가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알아차렸지만 자기 입장에 몰두했는지, 갈등 상황에서 정서적으로 과부하됐는지, 관계를 유지하려는 동기가 약했는지 외부 관찰만으로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비슷한 모습은 다른 이유에서도 나타날 수 있어요.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상태에서는 타인의 신호에 반응할 여력이 줄 수 있고, 사회적 의사소통의 발달 차이는 감정 신호를 읽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인격장애나 불안 문제와 일부 장면이 겹쳐 보일 수도 있고요. 서로 다른 원인을 한 단어로 묶으면 당사자에게 낙인이 생길 뿐 아니라 실제 필요한 도움을 찾는 데도 방해가 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진단을 확정하지 못하면 관계의 문제를 말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힘들다고 말했는데 이야기가 계속 상대의 성취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과 뒤에도 같은 약속 위반이 반복됐다”처럼 관찰 가능한 행동은 병명을 모르더라도 다룰 수 있어요. 진단과 경계 설정은 서로 다른 작업입니다.
연극적인 감정 표현이나 관심 욕구가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른 진단을 섞어도 안 돼요. 연극성 인격장애의 분류 방식처럼 겉으로 비슷한 행동이 있어도 전체 기능과 맥락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는 병명보다 수정 가능한 행동을 보세요

상대가 자기애성 인격장애인지 알아내는 것보다 현실적인 질문은 “내가 어려움을 말했을 때 대화가 수정될 수 있는가”예요.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반응했더라도 시간이 지나 사실을 다시 보고, 상대의 말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바꾸려는 과정이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공감적인 말 자체보다 이후의 선택이 관계의 변화를 더 잘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감정을 설명할 때마다 대화가 원래 문제에서 벗어나거나, 한 사람이 계속 설명하고 수습해야 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그 패턴 자체가 중요한 정보예요. 이때 필요한 것은 인터넷 진단표가 아니라 내가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에요. 대화를 멈출 조건, 연락 가능한 시간, 돈이나 개인정보처럼 공유하지 않을 영역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본인에게 공감 문제나 반복되는 관계 갈등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공감이 없는 사람인가”라고 자기정체성을 굳히기보다 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관점을 놓치는지, 감정 반응과 행동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는지 기록하는 편이 유용해요. 임상 평가는 이런 패턴을 다른 정신건강 상태, 발달 과정, 현재 스트레스와 함께 살펴봅니다.
연구도 아직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해요. NPD를 직접 진단한 표본 연구는 규모가 제한적이고, 공감 측정 도구마다 잡아내는 기능이 다르며, 실험실 과제가 실제 관계를 완전히 재현하지 못합니다. 문화와 연령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고 읽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어요. 따라서 현재 근거로 말할 수 있는 범위는 “공감의 어려움이 중요한 임상 특징이지만, 그 기능을 하나의 결핍으로 단순화하면 실제 자료를 놓친다”는 정도가 더 정확합니다.
참고한 자료와 읽을 때의 주의점
MSD Manual Professional,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 — Full Review 2023년 9월, 최종 업데이트 2026년 1월, 최종 확인 2026-09-13. 현재 임상 진단의 큰 틀과 공감의 어려움, 자존감 조절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원문
Ritter K et al. Lack of empathy in patients with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Psychiatry Research, 2011;187(1-2):241-247. DOI 10.1016/j.psychres.2010.09.013. NPD 47명, 건강 대조군 53명, BPD 임상 대조군 27명의 정서적·인지적 공감을 여러 도구로 비교한 연구입니다. 최종 확인 2026-09-13. PubMed
Marissen MAE, Deen ML, Franken IHA. Disturbed emotion recognition in patients with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Psychiatry Research, 2012;198(2):269-273. DOI 10.1016/j.psychres.2011.12.042. NPD·C군 인격장애·건강 대조군 각 20명을 비교한 감정 인식 연구입니다. 최종 확인 2026-09-13. PubMed
Baskin-Sommers A, Krusemark E, Ronningstam E. Empathy in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from clinical and empirical perspectives. Personality Disorders, 2014;5(3):323-333. DOI 10.1037/per0000061. 당시 NPD 공감 연구의 수와 방법론적 한계를 함께 정리한 리뷰입니다. 최종 확인 2026-09-13. PubMed
Weinberg I, Ronningstam E.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Progress in Understanding and Treatment. Focus, 2022;20(4):368-377. DOI 10.1176/appi.focus.20220052. 공감, 자기조절, 대인관계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는 최근의 임상적 이해를 정리한 리뷰입니다. 최종 확인 2026-09-13. PubMed
Hepper EG, Hart CM, Sedikides C. Moving Narcissus: Can Narcissists Be Empathic?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014;40(9):1079-1091. DOI 10.1177/0146167214535812. 임상 진단군이 아니라 자기애 특성을 측정한 세 연구로, 관점 취하기 지시가 공감 반응과 관련된 일부 차이를 줄일 수 있는지 살핀 자료입니다. 최종 확인 2026-09-13. PubMed
이 글은 일반적인 심리학·정신건강 정보를 설명하며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아요. 특정 사람의 공감 행동만으로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판단하지 마세요. 관계 갈등이나 성격 문제로 생활 기능이 계속 흔들린다면 정신건강의학과 등 자격 있는 전문가에게 개인 상황을 포함해 평가받는 것이 적절합니다.